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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벼루
명징(明澄)한 남한강을 따라 구절양장 길을 하염없이 달린다.
강 그림자를 따라 산이 달리고 들판이 달린다.
단양에서 강원 영월로 이어지는 길 위로 드리워진 겨울이 깊다 못해 무겁다.
수려한 풍광에 마음을 놓치길 수차례, 이윽고 다다른 곳은 단양군 영춘면
하리(下里).
마을 옆으론 맑은 강물이 넘실거리고 병풍처럼 둘러싼 소백산 자락들이 길손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바로 이 평화로운 마을에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석벼루를 만들고 있는 신명식 선생이 있다.
신명식 선생이 만드는 자석벼루. 단양에서만 유일하게 나오는 자줏빛 돌로 만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단단하면서도 입자가 고와 벼루에 먹이 달라붙는 듯한 느낌, 수분 흡수율이 매우 적어 갈아놓은 먹물을
오래 두고 사용할 수 있고, 찌꺼기도 남지 않는게 특징이다.
그래서 그만큼 귀하고 만들기도 쉽지않아 검은 빛이 나는 오석(烏石)벼루와
쌍벽을 이룬다.
천하제일이라는 중국의 단계연(端溪硯)에 비견될 만큼 고급으로 친다.
신명식 선생이 벼루와 인연을 맺게된 것은 조부때부터. 조부는 대한제국 말기에 충남 보령에서
이름을 날리던 장인이었다.
부친 역시 장인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징용되어 단양(지금의 영춘면)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역시 벼루 만드는 사역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후 해방과 함께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역시 생업인 벼루를 만들었다.
“조부께서 자석벼루를 만드셨어요. 주로 양반 중에서도 권문세가에 공급했다더군요.
그러나 부친 대에 와서 광산을 찾지 못하는 바람에 자석벼루를 만들지 못해 맥이 끊어졌죠.
그런데 일제는 그 자석광산이 단양에 있다는 것을 안겁니다. 한마디로 그 가치를 안거죠.”
그 옛날의 회상을 떨쳐버리듯 잠시 깊이 숨을 고른 신명식 선생은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어릴때부터 눈만 뜨면 돌이 있었고, 놀이도 돌을 갖고 했다. 자라면서는 부친의 어깨너머로
서투르게나마 조각을 배웠다.
그리고 18세때부터 가업을 잇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어느날 부친이 흘러가는 말로 “단양 어딘가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자줏빛
돌이 나는데,
벼루 재료로는 세상에 이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곳이 어딘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옴짝달싹 못하고 작업장에만 갇혀 지냈기 때문에 광산의 위치를 제대로 알 수가 없는 것은 당연했지만,
들을 때마다 속이 상했다.
이때부터 기필코 내 손으로 찾으리란 결심을 하게 된다.
“최고의 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기술자라면 누군들 욕심내지 않겠어요. 도무지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어느날 무작정 단양 땅을 찾았다. 천하일품 벼루를 만들어보겠다는 일념, 맥이 끊긴 자석벼루를
복원하겠다는 열정이 그를 앞장세웠다.
그리고 단양 일대를 이잡듯이 헤집고 다니길 10여일. 우연히 만난 한 촌노는 일제시대 일인들이
단양 향산면 가곡리에 있는 산에서 붉은 돌을 캐내 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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